아파나시스 쿠즈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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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파나시스 쿠즈민스는 라트비아의 사격 선수로, 소련 대표로 활동하다가 소련 붕괴 후 라트비아 국적을 취득하여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총 9번의 올림픽에 출전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25m 속사권총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25m 센터파이어 권총 단체전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1985년 명예휘장훈장, 2007년 비에스투르스 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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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나시스 쿠즈민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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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아파나시스 쿠즈민스 |
국적 | 소련 라트비아 |
출생일 | 1947년 3월 22일 |
출생지 | 소련 라트비아 SSR 비케르니에키 교구 |
신장 | 178cm |
체중 | 89kg |
스포츠 경력 | |
종목 | 스포츠 사격 |
코치 | 알렉산드르스 레슈친스키스 |
올림픽 메달 (남성 사격) | |
올림픽 | 1988 서울 |
종목 | 25m 속사 권총 |
올림픽 | 1992 바르셀로나 |
종목 | 25m 속사 권총 |
2. 소련 선수 경력
라트비아 SSR의 다우가프필스구를 구성하는 자치체인 비케르니옉스키에서 태어났다. 14세 때인 1961년에 사격을 시작했고, 1973년에 라트비아 체육 문화 연구소를 졸업했다. 1974년부터 소련 국가대표 사격 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스위스 툰에서 열린 1974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는 25m 속사권총 개인전에서 7위, 25m 스탠더드 권총 개인전에서 8위를 기록했고, 단체전에서는 50m 권총을 포함하여 3종목에 참가하여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참가하는 소련 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그는 25m 속사권총 개인전에서 동독의 노르베르크 클라어와 위르겐 비펠,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페라리스의 뒤를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이후 모스크바에서 열린 1980년 하계 올림픽에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25m 속사권총 개인전에 출전하여 6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듬해인 1981년에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그라드에서 열린 1981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25m 속사권총 종목에서 대표팀 동료인 이고리 푸지레프와 루마니아의 코르넬리우 이온의 뒤를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1982년에는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열린 1982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으며, 25m 속사권총 개인전에서 6위, 25m 스탠더드 권총 개인전에서 5위를 기록하며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으나 두 종목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4년 하계 올림픽에는 소련의 보이콧으로 인해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후 1985년에 유고슬라비아 오시예크에서 열린 1985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25m 스탠더드 권총 개인전에서 핀란드의 파보 팔로캉아스와 세포 매키넨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6년 9월에 동독의 줄에서 열린 1986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고, 25m 스탠더드 권총 개인전에서 오스트리아의 헤르만 자일러와 대표팀 동료인 이고리 바신스키를 누르고 첫 세계 선수권 대회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25m 센터파이어 권총 개인전에서는 대표팀 동료인 트카초프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개인전 외에 단체전에서도 활약하여 스탠더드 권총, 센터파이어 권총, 속사권총 단체전에 참가하여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였으며, 이 대회는 그가 소련 국가대표로서 참가하는 마지막 올림픽 대회이다. 그는 25m 속사권총 종목에서 서독의 랄프 슈만과 헝가리의 코바치 졸탄를 누르고 첫 올림픽 메달이자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후 1990년 8월에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1990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고, 속사권총 4위, 스탠더드 5위, 센터파이어 8위를 기록하며 개인전 메달을 놓쳤으나 단체전 3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91년 6월에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1991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는 속사권총에서 슈만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고, 스탠더드 권총에서 대표팀 동료인 세르게이 피지야노프와 핀란드의 매키넨의 뒤를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2. 1. 국제 대회 경력
아파나시스 쿠즈민스는 14세 때인 1961년에 사격을 시작했고, 1973년에 라트비아 체육 문화 연구소를 졸업했다. 1974년부터 소련 국가대표 사격 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스위스 툰에서 열린 1974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25m 속사권총 개인전에서 7위, 25m 스탠더드 권총 개인전에서 8위를 기록했고, 단체전에서는 50m 권총을 포함하여 3종목에 참가하여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25m 속사권총 개인전에서 4위를 기록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는 같은 종목에서 6위를 기록했다. 1981년 유고슬라비아 티토그라드에서 열린 1981년 유럽 선수권 대회 25m 속사권총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82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1982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25m 속사권총 개인전에서 6위, 25m 스탠더드 권총 개인전에서 5위를 기록하며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으나 두 종목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소련의 보이콧으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985년 유럽 선수권 대회 25m 스탠더드 권총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6년 세계 선수권 대회 25m 스탠더드 권총 개인전에서 금메달, 25m 센터파이어 권총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단체전에서도 스탠더드 권총, 센터파이어 권총, 속사권총 단체전에 참가하여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25m 속사권총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90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개인전 메달을 놓쳤으나 단체전 3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91년 유럽 선수권 대회 속사권총에서 은메달, 스탠더드 권총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에는 라트비아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9번의 올림픽에 출전하여 올림픽 출전 횟수가 많은 선수 중 한 명이다.
3. 라트비아 선수 경력
1991년 소련 붕괴 후 라트비아 국적을 택한 쿠즈민스는 1992년 5월 독일 줄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라트비아 국가대표로 첫 국제 경기를 가졌으며, 속사권총 종목 6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7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92년 하계 올림픽 25m 속사권총 개인전에서 독일의 슈만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3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속사권총 6위를 기록했다.
1994년 밀라노에서 열린 1994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속사권총 39위, 스탠더드 권총 23위를 기록했다. 1995년 4월 히로시마 월드컵에서 10m 공기권총 34위를 기록했고, 6월 밀라노 월드컵 속사권총 경기에서 폴란드의 크시슈토프 쿠하르치크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10월 취리히에서 열린 1995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속사권총 4위를 기록했다.
1996년 3월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속사권총에서 불가리아의 에밀 밀레프와 카자흐스탄의 블라디미르 보흐먀닌의 뒤를 이어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공기권총에서도 프랑스의 프랑크 뒤물랭과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디 돈나의 뒤를 이어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004년 하계 올림픽에는 랭킹 포인트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국제 사격 연맹이 와일드카드로 참가를 허가하여 출전했다. 2008년 하계 올림픽에는 61세의 나이로 참가하여 13위를 기록했고,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17위를 기록했다.
쿠즈민스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총 9번의 올림픽에 출전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는 소련,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에는 라트비아 선수로 출전)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소련의 보이콧으로 불참했다. 베이징 올림픽과 런던 올림픽에서 그는 캐나다의 이안 밀러 다음으로 올림픽 출전 횟수가 많은 선수이자, 호케쓰 히로시, 밀러에 이은 세 번째 고령 선수였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그의 좌우명은 "생애 현역"이다.
3. 1. 국제 대회 경력
1991년 소련 붕괴 후 라트비아 국적을 택한 쿠즈민스는 1992년 5월 독일 줄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라트비아 국가대표로 첫 국제 경기를 가졌으며, 속사권총 종목 6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7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92년 하계 올림픽 25m 속사권총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3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속사권총 6위를 기록했다.1994년 밀라노에서 열린 1994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속사권총 39위, 스탠더드 권총 23위를 기록했다. 1995년 4월 히로시마 월드컵에서 10m 공기권총 34위를 기록했고, 6월 밀라노 월드컵 속사권총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10월 취리히에서 열린 1995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속사권총 4위를 기록했다.
1996년 3월 아바나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속사권총과 공기권총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04년 하계 올림픽에는 와일드카드로 참가했다. 2008년 하계 올림픽에는 61세의 나이로 참가하여 13위를 기록했고,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17위를 기록했다.
쿠즈민스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총 9번의 올림픽에 출전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는 소련,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에는 라트비아 선수로 출전)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소련의 보이콧으로 불참했다. 베이징 올림픽과 런던 올림픽에서 그는 이안 밀러 다음으로 올림픽 출전 횟수가 많은 선수이자, 호케쓰 히로시와 밀러에 이어 세 번째 고령 선수였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4. 올림픽 성적
아파나시스 쿠즈민스는 1976년 하계 올림픽에 처음 참가하여 25m 속사권총에서 4위를 기록했다. 이후 1980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같은 종목에서 6위를 기록했다. 소련의 보이콧으로 1984년 하계 올림픽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98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25m 속사권총에서 서독의 랄프 슈만과 헝가리의 코바치 졸탄을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소련 붕괴 후 라트비아 국적으로 참가한 199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25m 속사권총에서 독일의 슈만에게 뒤를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6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25m 속사권총 10위, 10m 공기권총 29위를 기록했다.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25m 속사권총 8위,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같은 종목 14위,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13위를 기록했다. 201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17위를 기록했다.
대회 | 1976 | 1980 | 1988 | 1992 | 1996 | 2000 | 2004 | 2008 |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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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m 속사 권총 | 4위 595 | 6위 595 | | } | 16x16px }}]]}} 금메달 598+100 |} | } | 16x16px }}]]}} 은메달 590+195+97 |10위 585 |8위 585 |14위 574 |13위 565 |17위 569 |- |align=left|10m 공기 권총 | - | - | - | - |29위 574 | - | - | - | - |} 5. 세계 기록(쿠즈민스, 바신스키, 피지야노프) | 1985년 9월 10일 1986년 9월 8일 | 오시예크 주울 |
6. 수훈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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